새로운 이름의 위력
자신에게 씨름을 걸어 결국 형 에서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박탈한 천사에게 야곱은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결코 그를 보낼 수 없다고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끊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이 무위로 끝나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수단인 것을 그 때가 되어서야 깨닫습니다.
천사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야곱에게 이름을 묻고 (결코 그가 이름을 모를리 없음) 그에게 이스라엘(하나님의 황태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합니다. 탈출의 방법이나 능력을 주지 않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그를 축복하였습니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이 싯점에서 야곱은 이름 변경의 중요성을 그다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새로운 이름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도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께서 생명을 버리시고 구원할 만한, 새로운 이름의 소유자입니다.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창 32:30)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야곱이 바라 본 태양은 이전의 태양이 아니었습니다. 태양이 너무나 눈부시게 찬란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를 반겼습니다. 그에게 갈등의 경계선이었던 얍복강이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제밤 씨름으로 환도뼈가 위골되어 그 고통으로 절었지만 그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고 모든 것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어야 하지만, 그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셨다는 사실에 다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여 주신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임성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