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행 2:42,46-47)
성전 미문에 앉아서 성전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 스스로 일어나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호구지책으로 구걸하기 위하여 가족의 도움을 받아 성전미문에 날마다 나왔다. 그가 그 곳에 앉아 있는 이유는 다른 곳보다 더 나은 호의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들 중에는 혹 이웃에게 자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더 받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날 그의 생애 최고의 호의를 받게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전예배에 모임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성도들과 같이 정기적으로 성전예배에 참석하였다. 이 때는 성전에서 저녁 희생제사를 행하는 시간으로 그들은 이 곳에서 기도하는 기회를 갖고 있었다. 이 때까지 교회 구성원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유대교와 큰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에 모이고 있었다.
유대교와 큰 갈등이 없었지만 불편함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시기에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덕목 중의 하나인 성전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날 코비디로 인하여 대면예배를 드리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 속히 이 사태가 회복되어 대면예배가 속히 정장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베드로와 요한의 동행
그리스도인이 함께 동역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다. 시편 기자도 그 부러움을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한 마음으로 동역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3-4장 (앉은뱅이 사건, 회개메시지 선포, 공회 앞에서 복음전파, 치유역사), 8:14 (사마리아 방문), 갈 2:9 (바울과 바나바와 교제) 등 여러 사역을 함께 감당하였다.
오늘날 단독사역은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특별히 사역에 필요한 많은 조건들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전문성과 일관성을 요구하고 있다. 사역지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이전과 현저하게 다르며 지속적인 연장교육과 혼자서는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다양한 현장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기적의 근원은 예수님
베드로와 요한은 일어서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기적을 실행한다. 그러나 그 기적의 근원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어려운 이웃에게 기적을 실행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며 자랑할 만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능력 중에는 치유의 은사가 분명히 있으며 예수님께서 그런 은사의 필요성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행하도록 우리에게 명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적은 사도들의 경건과 능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12절). 기적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에게로 나아오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다. “이 생명의 주”께서는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기적을 베푸신다 (15절).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보다 부활하신 후에 더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기적의 문을 넓게 열어놓으셨다. 문제를 치유하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은 단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이 이름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는 치유를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주술적으로 사용하는가 (행 19:13-17), 아니면 우리의 구원과 치유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간구하는가?
임성진 총장